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 소미미디어

책 표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가공범』 출간에 힘입어, 그의 대표작들 역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흔히 언급된다. 100권이 넘는 그의 저서는 여러 시리즈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갈릴레오 탐정 시리즈와 가가 형사 시리즈가 있다. 『용의자 X의 헌신』과 『악의』는 각각의 진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갈릴레오라는 인물을 언뜻 엿보긴 했지만, 작가가 가장 애정을 쏟아온 캐릭터로 알려진 가가 형사가 더욱 궁금해졌다. 기왕이라면 시리즈를 차례로 섭렵하고 싶었지만,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애석하게도 구독 플랫폼에서도 가가 형사 시리즈는 서비스되고 있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밀리를 하염없이 뒤적이다가, 작가의 발자취나 따라가 보자는 심정으로 데뷔작 『방과 후』를 열람하게 되었다.

학교라는 곳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라는 것이 지난 5년 동안 내가 갖게 된 느낌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 주위에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소설은 어느 해 9월 10일부터 10월 7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사립 세이카 여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기록한다. 주인공은 이 학교의 수학 교사이자 양궁부 지도교사인 마에시마 선생이다. 소설은 인물에 대한 묘사나 서사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대신, 그가 처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먼저 들이밀며 포문을 연다.

아이들의 몇 퍼센트쯤이나 내 수업을 알아듣는지 심히 미심쩍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쉴 새 없이 필기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시험을 볼 때마다 매번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기사라도 있어?” 이런 식으로 끈적거리는 그의 말투가 싫었다. 용건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이런 알랑거리는 듯한 몇 마디를 늘어놓는다.

딱히 원한을 살 만한 캐릭터도 아닐뿐더러, 그럴 만한 서사도 없어 보인다. 그저 적당한 매너리즘과 적당한 책임감을 가진 직장인 정도랄까. 그런 그가 어째서 살해위협까지 받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정작 살해위협을 느끼는 주인공 대신,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위협받는 사람과 희생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으니, “도대체 누가 타깃인가”라는 질문이 “범인은 누구인가”와 나란히 따라붙는다. 첫 번째 사건에서는 밀실이라는 장치가 등장하는데, 트릭 자체보다는 그것이 수사를 흔들고 인물들을 하나씩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더 인상적이었다. 미스터리의 쾌감보다는 인간관계의 지형도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 자꾸 눈이 갔다.

다만 등장인물이 많아 초반에는 다소 혼란스럽다. 요코, 게이코 등 여러 이름이 쌓이는데, 각각이 왜 등장하는지 윤곽이 잡히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기억이 흐릿해져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고, 재독 후에야 인물들 사이의 선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건이 예고될 즈음에도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기는커녕, 또 다른 퍼즐이 추가됐다는 느낌이 앞섰다. 학교라는 배경도 중반까지는 꼭 학교여야만 가능한 사건이라기보다,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 정도로 먼저 다가왔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이 공간이 왜 선택되었는지가 비로소 맞물렸다.

끝까지 읽고 난 뒤 남은 감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범인들의 동기에 대한 거리감이다. 감정의 출발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살인까지 이어지는 선택은 끝내 납득이 어려웠다. 설명은 되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 그 간극이 책을 덮고 나서도 남았다.

또 하나는 주인공과 관련된 마지막 반전의 당혹감이다. 놀랍다기보다 당황스러웠다. 반전이 가져오는 결과가 그것을 향한 감정의 크기에 비해 너무 과하게 느껴져서, 통쾌한 마무리보다 “여기까지 가야 했을까”라는 물음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이 책을 ‘명작’으로 읽지 않았다. ‘작가의 출발점’으로 읽었다. 그 시각에서 보면 『방과 후』는 충분히 흥미롭다. 사건으로 시작해 혼선을 만들고 인물을 띄우고 의심을 쌓아가는, 히가시노가 독자를 끌어가는 방식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 완벽히 납득되진 않았지만, 히가시노의 시작을 밟아본 경험 자체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밀실트릭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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